정월대보름! 올해도 어김없이 둥실둥실 떠오른 보름달은 유난히 탐스럽고, 왠지 모르게 넉살 좋게 생겼다. 마치 “야, 올해도 잘 부탁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정월대보름은 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올해도 역시나였다.
계획은 이랬다. 해 뜨기 전부터 일어나 부럼을 깨물고, 귀밝이술을 마시고, 쥐불놀이를 하고, 달맞이를 하며 소원을 빌고, 오곡밥을 먹는… 완벽한 정월대보름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마치 드라마 한 편을 찍듯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완벽한 사진들을 찍으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해 뜨기 전에 일어난다는 건 실패부터 시작이었다.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지만, 침대는 너무나도 포근했고, 이불은 마치 나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꽉 붙잡고 있었다. 결국 늦잠을 자버렸고, 부럼 깨무는 건 꿈도 못 꾸었다. 대신 급하게 냉장고에서 꺼낸 딱딱한 사과를 우걱우걱 씹으며 부럼 대용으로 삼았다. 맛은… 그냥 사과였다.
귀밝이술은? 술을 잘 못 마시는 나는 귀밝이술 대신 귀를 맑게 해줄 듯한 녹차를 마셨다. 알콜 대신 카페인으로 정신을 맑게 깨우는 묘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녹차의 향긋함보다는 늦잠의 죄책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쥐불놀이? 내가 사는 아파트는 쥐불놀이 금지 구역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몰래 쥐불놀이를 하는 상상을 해봤지만, 관리실의 엄중한 경고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쥐불놀이는 포기하고, 유튜브에서 쥐불놀이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껴야 했다. 화면 속 쥐불놀이는 참으로 낭만적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달맞이 시간. 보름달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보름달의 아름다움 속에서 나는 혼자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소원을 빌 시간도 없이, 컵라면의 뜨거운 국물에 정신이 팔려버렸다. 소원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어쩌면 내년 정월대보름에도 컵라면을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오곡밥. 오곡밥은 엄마가 해주신 따뜻한 오곡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