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이 왔다. 명절의 흥겨움과 함께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세뱃돈’이다. 어른들은 늘 웃는 얼굴로 봉투를 건네지만, 그 안의 액수를 확인하는 순간 내 얼굴은 급격히 굳어진다. 물론, 액수가 적어서 굳어지는 건 아니다. 문제는… 세뱃돈을 받는 쪽이 나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27살 먹은 어른이다. 어른이라는 말은, 어린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통장 잔고는 늘 겨울잠 자는 곰처럼 움직임이 없다. 세뱃돈을 주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며 밤잠을 설치는 나의 모습은, 마치 첩보 영화의 주인공이 극비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긴장감 넘친다.
올해는 특히 심각했다. 조카 셋, 사촌 동생 둘, 그리고 친척 어린이들까지 합치니 무려 여덟 명이나 된다. 각자의 나이와 친밀도에 따라 세뱃돈 액수를 조절해야 하는데, 그 계산 과정은 마치 복잡한 수학 공식을 푸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만약 액수를 잘못 정했다가는, 얄궂은 조카들의 따가운 시선과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감수해야 한다. 나는 이미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세웠다. ‘세뱃돈 봉투 탈출 작전’이다. 첫 번째 작전은 ‘은밀한 봉투 숨기기’였다. 세뱃돈 봉투를 쇼핑백 깊숙이 숨기고, 봉투를 꺼내는 시늉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은 조카들의 날카로운 눈썰미 앞에 무참히 실패했다. 내가 쇼핑백을 뒤적거리는 순간, 조카들은 마치 훈련받은 탐지견처럼 봉투를 찾아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걸렸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두 번째 작전은 ‘환상의 분신술’이었다. 미리 준비해둔 똑같은 봉투를 여러 개 만들어, 조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 역시 실패했다. 조카들은 봉투의 무게를 재고, 두께를 확인하며 진짜 봉투를 찾아냈다. 그들의 탐색 능력은 마치 보물 사냥꾼의 그것과 같았다. 나는 그들의 놀라운 능력에 경외감마저 느꼈다.
세 번째 작전은 ‘감동의 눈물 작전’이었다. 세뱃돈을 주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