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폭탄 하나로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위대한 독립운동가이시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잠시 엄숙한 분위기를 벗어던지고, 윤봉길 의사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려 한다. 마치… 핵인싸처럼 말이다.
자, 상상해보자.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 일제의 기세등등한 기념식 현장. 엄중한 경비 속에서, 윤봉길 의사는 마치 힙스터처럼 멋들어진 도시락을 들고 나타난다. 일반적인 도시락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도시락이었지만, 안에는 폭탄이… 아니, 일단 겉모습부터 살펴보자. 고급스러운 도시락통에, 정성스럽게 싸인 찰밥과 김밥, 그리고 큼지막한 닭고기 조림. 마치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처럼 보였다. (실제로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효자셨다.)
하지만 이 도시락은 단순한 도시락이 아니었다. ‘핵인싸 도시락’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도시락이었다. 일반적인 도시락이라면, 기껏해야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는 정도의 효과를 발휘했겠지만,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은 달랐다. 폭발과 함께, 일제의 고위 간부들을 날려 버렸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핵’인싸 도시락이었다.
상상해보라. 당시 홍커우 공원의 분위기를.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일본 고위 관계자들, 경계를 서는 엄중한 경비병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윤봉길 의사. 마치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락을 꺼내들고,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도시락에 눈길을 준다. 맛있어 보이는 찰밥과 김밥, 그리고 푸짐한 닭고기 조림. 그들의 시선은 탐욕스러웠다. ‘저 도시락, 맛있겠다…’
그리고 폭발.
순간, 공원은 아수라장이 된다. 일본 고위 관계자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고, 경비병들은 혼란에 빠진다. 윤봉길 의사는 체포되지만, 그의 도시락은 역사에 길이 남는 ‘핵인싸 도시락’으로 기록된다. 만약 그가 페이스북을 했다면, ‘좋아요’와 ‘공유’가 폭발했을 것이다. ‘핵인싸’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